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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문학예술사에 뚜렷한 자욱을 남긴 문예인들2
노래로 시작되고 노래로 전진하며 승리떨쳐온 우리 혁명의 긍지높은 행로에 시대의 명곡들과 더불어 자기의 이름을 뚜렷이 남긴 문예인들중에는 우리 나라의 첫 공훈예술가, 첫 인민예술가의 한사람인 김옥성선생도 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청산벌에 풍년이 왔네〉를 창작한 작곡가는 재능있는 작곡가이며 인민의 사랑을 받는 음악가입니다.》
김옥성선생은 어려서부터 음악의 꿈을 안고 가난한 살림속에서도 음악공부를 꾸준히 하였다.
김옥성선생이 음악가로서의 참다운 인생의 길을 걸으며 창작의 거세찬 열정을 선률에 담을수 있은것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조국을 찾아주신 때부터였다.
1947년 조선인민군협주단에 입대한 김옥성선생은 바이올린연주가였지만 녀성들도 새 조국건설의 당당한 주인으로 내세워주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은덕을 노래하고싶은 충동을 안고 《녀성의 노래》를 창작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에게 창작적재능이 있다고, 앞으로 노래를 창작하는 작곡가가 되는것이 좋겠다는 최상의 믿음을 안겨주시였다.
그날의 감격은 김옥성선생이 세계적인 작곡가로 인생을 빛내일수 있게 한 원동력이였다.
그후 김옥성선생은 조국해방의 력사적위업을 이룩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불멸의 업적과 위인적풍모를 격조높이 구가한 《김일성장군교성곡》, 교성곡 《압록강》을 창작하였으며 전쟁이 일어나자 용약 전선으로 달려나가 종군작곡가로 활동하면서 인민군전사들을 영웅적위훈에로 불러일으켰다.
《결전의 길로》와 《전호속의 나의 노래》는 김옥성선생이 불비쏟아지는 고지에서 인민군전사들과 함께 싸우면서 창작한 명곡들이다.
전후에도 김옥성선생은 당의 뜻을 높이 받들고 부강조국건설에 떨쳐나선 우리 인민들의 영웅적인 투쟁과 생활, 들끓는 시대의 숨결을 반영한 많은 음악작품들을 작곡하여 주체음악예술발전에 이바지하였다.
특히 《청산벌에 풍년이 왔네》, 《황금나무 능금나무 산에 심었소》의 창작과정은 우리 문예인들이 어떻게 살며 투쟁해야 하는가에 대한 대답을 주고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청산리에 나가시여 청산리정신, 청산리방법을 창조하시였다는 소식은 김옥성선생의 가슴을 세찬 흥분으로 들끓게 했다.김옥성선생은 그날로 청산벌에 달려갔다.봄, 여름, 가을 농장원들속에 들어가 들끓는 생활체험을 하면서 김옥성선생이 보고 듣고 느낀 모든것은 그대로 선률로 옮겨졌으며 시대정신이 약동하는 명곡을 낳았다.
하기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김옥성선생에게 자연을 노래한 작곡가가 아니라 당정책을 노래한 작곡가라는 고귀한 평가를 안겨주시였으며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의 뛰여난 재능과 불같은 창작적열정에 대하여 높이 치하하시며 세계적인 작곡가로 영광의 최절정에 세워주시였다.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그의 생일 100돐을 맞으며 기념음악회를 진행하도록 크나큰 은정을 베풀어주시였다.
사회주의의 전면적발전을 위한 오늘의 진군길에서 꺼질줄 모르는 생명력을 발휘하며 높이 울려퍼지고있는 시대의 명곡들과 더불어 김옥성선생이 주체문학예술사에 남긴 공적은 길이 전해질것이다.
본사기자 조향미
자료제공: 《로동신문》 2026년 5월 10일 <저작권자 ⓒ 프레스아리랑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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