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동북항일연군 허형식 장군 순국 78주년 시민추모식

프레스아리랑 | 입력 : 2020/08/03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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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스아리랑=문해청 기자]  민족문제연구소구미지회(지회장 이수연)는 1일 임은동 266번지 왕산 허위 선생 기념공원(생가터)에서 '백마타고 오는 초인' 동북항일연군 3로군 총참모장 허형식 장군 순국 78 주년 시민추모식를 구미에서 최초로 개최했다.

 
이육사 선생의 어머니 허길은 허형식의 사촌 누이였다. 또한 허길은 조선의 3대 자주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 석주 이상룡, 왕산 허위 선생의 가문이다. 
 
자주독립운동가 가문 허길 어머니의 아들 독립투사 민족시인 이육사(이원록, 264) 선생은 의열단義烈團 3대 쾌거快擧라고 호칭呼稱하는  장진홍 의사義士의 조선은행대구지점朝鮮銀行大丘支店 폭파사건爆破事件에 연루連累되었고 대구교도소大丘矯導所에서 옥고獄苦를 치루었다. 
 
이 때 수인번호囚人番號가 264 였고 이후 이육사를 필명筆名 또는 이명異名으로 쓰게 된다.  
 
장진홍 의사와 이육사 선생은 의열단義烈團 핵심단원核心團員으로 반외세해방反外勢解放 자주독립운동전선自主獨立運動戰線에서 혈투血鬪로 결사決死한 동지同志 였다. 
그런 데 허형식 장군將軍의 구미 생가터 주소지가 공요롭게도 임은동  264번지다. 
 
이날 멀리 동북아연구재단 장세윤 박사와 <만주 제일의 항일 파르티잔 허형식 장군> (눈빛 펴냄)이란 허형식 장군에 대한 실록소설을 펴낸 박도 작가도 참가하였다. 
 
행사를 진행하자 허형식 장군 순국 78주년 시민추모식 제단에 < 제일의 항일 파르티잔만주 허형식 장군> (눈빛 펴냄)을 헌책獻冊하셨다. 
 
만주 제일의 허형식 장군은  '파르티잔(partisan)'이다. 사전으로  '정규군과는 별도로 적의 후방 등에서 정보통신, 군수창고, 주요 교통시설 파괴하거나 무기나 물자 탈취하는 비정규군' 의미하는 단어다. 다른 표현으로 게릴라군, 유격대이다.
 
박도 작가는  <제일의 항일 파르티잔만주 허형식 장군> 이 한 권의 책을 쓰기 위해 무려 16년의 공을 들였다며 서문을 소개했다. 
 
일제강점기가 시작 되는 해 1909년 허형식 장군은 경북 선산군 구미면 임은동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인근에는 일본 왕에게 혈서로 매국친일을 맹세했고 만주 군관학교를 졸업하며 자주독립운동가를 체포 학살하는 토벌대 장교가 된 박정희가 있었다. 
 
이와 달리 허형식 장군은 투철한 항일 전사 자주독립운동가의 길을 걸었다. 
 
1930년 5월 1일 중국 하얼빈 일본총영사관 습격 사건으로 심양 감옥에 갇힌 이후 출옥하고 나서 항일투쟁의 중국조선연합군 동북항일연군에 입대하고 오직 군인의 길을 걸었다.
 
또한 백선엽을 비롯한 매국친일 군인이 그렇듯 박정희 역시 해방된 조선에서 대한민국 국군으로 일본군 용병의 옷을 바꾸어 입었다. 그후 박정희 군부유신독재권력은 미완의 4.19 민주혁명을 총칼로 엎어버렸다. 그런 뒤 박정희는 18년 군사 독재자로 민주주의를 유린했다. 
 
그러나 허형식 장군은 자신의 신념과 지조를 버리지 않고 변함 없이 한 길을 걸았다. 만주국 일본군 토벌대와 맞서는 동북항일연군 제3로군 군장 겸 총참모장으로 끝까지 항일투쟁하다 최후를 마쳤다.
 
이렇게 극명한 다른 삶을 살다가 세상을 떠난 두 사람의 최후는 극과 극으로 비교가 되었다. 
 
일제강점기 철권통치에서 3.1만세운동 이후 유화적 문화우민정책을 펴던 1917년 태어나서 1979년 총탄을 맞고 생을 마친 박정희의 최후는 그저 비참하기만 했다. 그러나 허형식 장군의 최후는 비장했고, 준엄했으며 비극적이었지만 고결하고 아름다웠다. 
 
1909년 태어난 허형식 장군이 그렇게 최후를 맞이한 해는 해방을 얼마 앞둔 1942년이다.
 
그 해 8월 3일, 허형식 장군은 2명의 참모와 같이 동북항일연군 부대 순찰을 하고 부대로 귀대하는 중 오랫동안 염탐했던 일본군 밀정과 매복에 의해 중국 북만주 경안현 청봉령 소릉하 계곡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이게 되었다. 
 
동북항일연군을 토벌하기 위한 만주국 일본군 토벌대의 매복에 의한 기습적인 습격을 당했다. 
 
이때 허형식 장군은 자신의 최후를 인식하고 참모로 같이 갔던 두 명의 부하를 살리고 부대를 지키고자 자신을 토벌대의 먹잇감으로 유인하며 과감히 내놓았다.
 
허형식 장군의 부하 1명이 결국 안전하게 피신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부대원 100여 명 되는 비밀 조직원 명단을 일본 적군의 손에 넘기지 않을 수 있었다. 
 
이와 다르게 박정희는 혼자 살기 위해 1945년 이후 미군정시기 민간인을 사살할 수 없다고 주장하며 여수순천군부대 저항사건에서 자신과 함께했던 군부대 동지들의 명단을 미군정에게 고해 바쳤다. 그러나  '항일 파르티잔'  허형식 장군은 남달랐던 것이다. 
 
허형식 장군의 나이 33세, 젊디 젊은 그의 최후는 동북항일연군 부대 동지를 위해 총알 폭탄의 전장에 헌신한 진정한 장군의 모습이었다.
 
오늘 날 독립투사 민족시인 이육사 선생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264 선생의 시詩 '광야' 廣野로 유명한 이육사는 바로 허형식 장군과 외척 지간이다. 
 
그래서 허형식 장군을 기억하는 이들은 시詩 '광야' 廣野에서 이육사가 외치는 글귀에 주목했다.
 
'다시 천고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 놓아 부르게 하리라.'
 
독립투사 민족시인 이육사 선생이 외치는 '이 백마 타고 오는 초인'처럼 생전生前 전장戰場에서 허형식 장군은 늘 백마를 타고 다녔다고 한다. 허형식 장군은 키가 컸으며 잘 생긴 외모였다. 
 
1930년대 만주에서 허형식 장군과 독립투사 민족시인 이육사 선생이 만난 사실이 있다. 이때 백마를 타고 나타난 모습을 이육사 선생이 시詩로 만들었다는 설도 전해지고 있다.
 
허형식 장군의 일가 중 눈에 띄는 분이 또 있다. 
 
구한말 의병장 출신으로서 일제가 만든 서대문 형무소에서 순국 1호로 사형장 이슬이 된 왕산 허위 선생님이다. 이 분의 종조카가 바로 허형식 장군이다.
 
1962년 대한민국 건국 훈장 제1호로 추서 될 정도로 항일 운동에 앞장섰던 왕산 허위 선생은 일제의 핍박과 압살이 극심해지자 허씨 가문의 일가는 재산을 처분하고 우당 이회영, 석주 이상룡 가문이 떠난 비슷한 시기에 전부 만주로 망명하였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훗날 항일 군인으로 허형식 장군이 무장혁명군의 한 길을 걸어가는 결정적 이유가 되었다. 
 
이처럼 <만주 제일의 항일 파르티잔 허형식 장군> 실화소설은 바로 알려지지 않은 조선 말기 일제강점기 또 다른 영웅에 대한 기록이다.
 
한편 일본군 토벌대와 밀정에 의해 최후를 맞이한 허형식 장군의 최후는 참담했지만 아름다운 혁명가의 죽음이었다. 끝까지 교전을 벌렸던 그를 사살한 일본군 토벌대는 이후 그의 목만 잘라 머리를 갖고 하산했다. 
 
그리고 다음날, 동북항일연군이 총참모장의 시신만이라도 수습하기 위해 다시 산을 찾았을 때 확인할 수 있었던 그의 흔적은 오른쪽 다리 하나 뿐이었다고 한다. 
 
지난 밤새 산짐승이 시신을 훼손했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허형식 장군의 사라진 것은 그의 육신일 뿐, 그의 투지와 신념 그리고 항일정신은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 그것은 바로 허형식 장군의 이름이고 그가 최후까지 지켰던 반외세해방 자주독립운동정신이다. 
 
이런 이유로 박도 작가는 '다시 천고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  엄중한 실록 소설 허형식 장군을 권한다고 밝혔다. 
 
한편 이수연 지회장(민족문제연구소구미지회)은 오늘은 구미에서 최초라는 역사적 물꼬를 텄다는 것에 허형식 장군의 자주독립운동정신을 되새기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어 대구경북지역 및 구미를 변화시켜 나갈 것이란 실천이 시민에게 큰 감동을 줄 것이다. 그러므로 앞으로 자주독립운동정신계승과 선양을 계속 이어나갈 것입니다며 각오를 밝혔다.
 
이어 김병길 선생님(대구민주화운동원로회의)은 허형식 장군의 무장독립운동을 그동안 학계에서 역사가, 연구가 등이 감추고 있는 것은 잘 못 이다. 일제강점기시대 매국노친일파로 해방 후 숭미사대주의 반공이념으로 이 땅의 분단 분열 정책을 이승만 자유당 독재, 박정희 군부유신 공화당독재, 전두환, 노태우 신군부민정당, 민자당독재정권의 부역자로 앞장 섰던 백선엽씨를 국립묘지 거론하며 역사적으로 제대로 평가하지 못했던 우리 현실이 참으로 안타까운 것이다. 
 
앞으로 허형식 장군 동북연군의 협력 정신을 모범으로 이 땅의 자주적 평화통일 평화협정 실현을 국내 국외 민주 개혁 진보세력 및 시민사회단체 회원과 시민이 협력과 연대로 실행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허형식 장군 순국 78주년 시민추모식 참가자는 다음과 같다. 
 
허형식 장군 친조카 허창수, 안동 임청각 이항증 선생(국무령이상룡기념사업회), 동북아역사재단 장세윤 박사, 대구민주화운동원로회의 김병길, 더불어민주당 전. 구미갑지역위원장 김철호, 구미시의회 신문식 의원, 구미참여연대 집행위원장 박찬문, 민족문제연구소구미지회 지회장 이수연, 전. 지회장 전병택, 곽상수, 김영덕, 이무용, 이재섭, 임규익, 금오공대 연구원 박중보, 독립투사 민족시인 이육사기념사업회 자문위원장 이훈, 공동대표 문해청, 회원 남*, 구미인터넷뉴스 대표 김종성, 변화진 시인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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