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아메리칸 드림, 아메리칸 저주

프레스아리랑 | 기사입력 2023/02/06 [22:41]

아메리칸 드림, 아메리칸 저주

프레스아리랑 | 입력 : 2023/02/06 [22:41]

아메리칸 드림, 아메리칸 저주

 

                                                                                                 미주한국일보

      © 프레스아리랑


                                                                                                권정희 / 논설위원


이민 1세의 삶은 고단하다. 미국 땅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긴장의 연속이다. 낯선 땅, 낯선 언어, 낯선 문화, 낯선 시스템 그리고 빈약한 주머니 험한 일 마다 않고 밤낮으로 뛰어야 의식주의 모양새나마 갖출 수 있다. 그렇게 악착같이 일해서 살림 늘리고 아이들 공부시켜 번듯하게 독립시키고 나면, 어느새 세월은 흘러 노년. 숨 돌릴 틈 없이 열심히 살아온 인생이다. 그리고 나면 이제는 나를 위해 살 때라며 골프, 여행 등 젊어서 못 해본 것들을 즐기며 느긋하게 여생을 보내는 것이 1세들의 보편적 삶의 모습이다.

 

중국계 1세들도 다르지 않은데 그들은 특히 사교댄스를 좋아한다. 주말마다 멋지게 차려입고 사교댄스홀에 가서 춤추는 것을 노년의 큰 즐거움으로 삼는다. 지난 21일 음력설 전야를 맞아 남가주의 대표적 중국계 밀집지역인 몬트레이 팍 댄스홀에는 특히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대부분 6070대인 그들 중 11명은 그러나 설을 맞지 못했다. 돌연 생이 끝났다.

 

총소리, 비명소리, 10시 넘어 축제분위기가 한껏 무르익었을 때 후 칸 트랜이라는 남성이 나타나 반자동 소총을 쏘아댔다. 자그마한 체구, 72, 중국계 베트남 이민 1. 과거 그 댄스홀 단골이었다는 그가 어떻게 악마가 되었는지, 무엇이 그를 분노로 눈멀게 했는지그 자신 목숨을 끊었으니 추측만 가능할 뿐이다.

 

참극의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인 23, 이번에는 북가주에서 사건이 터졌다. 샌프란시스코 남쪽의 작은 마을 하프문 베이에서 66세의 중국계 이민자 춘리 자오가 공격용 반자동 총기로 7명을 사살했다. 그곳 농장 일꾼인 자오는 일터에서 무슨 갈등이 있었는지, 농장 두 곳을 찾아다니며 총질을 해댔다. 그리고 같은 날 저녁 오클랜드에서 총격사건이 일어나 한명이 숨지고 7명이 다쳤다.

 

이로써 캘리포니아에서는 44시간 동안 3건의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 19명이 살해되었다. 전쟁터가 아니고서는 세상 어디서도 일어날 수 없는 참사, 총의 나라 미국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이번 남가주와 북가주 사건들은 좀 예외적이다. 범인이 6070(최고령 총기난사범 기록)로 고령인 점, 인종별로 아시안인 점, 피해자들 역시 대부분 아시안인 점 그리고 사건 발생지역이 범죄율 낮은 조용한 도시라는 점. 게다가 캘리포니아는 총기규제가 강해서 총기로 인한 사망률이 전국에서 가장 낮다.

 

그럼에도 전혀 그럴 법 하지 않은 곳에서 전혀 그럴 법 하지 않은 사람들의 손에 무고한 사람들이 죽어나갔다. 인구(대략 33천만)보다 민간인 소지 총기(4)가 더 많은 나라, 담배보다 총 사는 게 더 쉬운 나라에서 누구도 예외는 아니라는 사실이 증명되었다. 성실하게 일해서 아메리칸 드림 성취하는 모범 소수계, 아시안도 미국의 총기문화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고 느닷없이 날아드는 총탄에 비명횡사할 수가 있다.

 

미국은 꿈의 나라이다. 누구에게나 기회가 주어지고 노력하는 한 꿈을 이룬다는 아메리칸 드림을 좇아 수많은 이민자들이 몰려왔다. 하지만 수 만년 인디언 원주민들이 살고 있던 땅을 유럽의 백인정착민들이 차지할 때 충돌이 없을 수 없었다. 평화롭게 살고 있던 인디언 부족들을 백인들은 총으로 몰아냈고, 거의 몰살시켰다. 인디언과 백인정착민 사이에 벌어진 인디언 전쟁은 1600년 초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300년 넘게 이어졌다. 건국의 아버지 조지 워싱턴은 건국 이전 뉴잉글랜드를 중심으로 한 동부지역에서 인디언 말살정책을 펼쳤다. 이어 독립전쟁이 끝나고 서부 개척시대가 열리면서 백인정착민들이 밀려들자 인디언들이 격렬하게 저항, 인디언 말살정책은 극한으로 치달았다. 수많은 생명이 희생되었다.

 

그렇게 뿌리 내리며 깊어진 것이 미국의 총기문화이다. 그리고 그 후손들이 물려받은 것은 총에 대한 본능적 애착, 하해와 같이 넘쳐나는 총, 언제 어디서 어느 총이 불을 뿜을지 모르는 위험한 현실이다. 수백년 무고한 피를 삼켰던 이 땅의 저주일지 모르겠다.

 

총기난사 사건은 계속될 것이다. 수억의 총기를 없앨 수는 없고, 총을 가져서는 안 되는 위험분자들의 손에도 총은 계속 쥐어질 것이다. 1990년대 시행되고 종료된 공격용 총기 및 대용량 탄창 금지법만 되살려도 좋겠지만 공화당이 연방하원을 장악하고 있는 한 가능성은 제로이다. 하원 공화당은 오히려 총기 소지, 판매 및 제조 권한을 확대 보호할 법안을 추진 중이다.

 

총기에 대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미국에서 공공의 건강을 해치는 대표적인 요인은 술, 담배, 자동차이다. 음주 흡연 자동차사고로 많은 인명이 희생된다. 그렇다고 이들을 금지할 수는 없으니 다양한 안전규정들이 도입되었다. 술 담배 구매연령 제한, 판매세 부과, 음주운전 처벌, 흡연의 위험성 경고문 명시 등이다. 자동차에 대해서도 운전면허 취득, 자동차 등록, 보험가입 등을 의무화했다. 그 결과 관련 사망률은 크게 낮아졌다.

 

총기에 대해서도 비슷한 규정이 필요하다. 총기소지 면허를 취득하고 지문을 찍고 신원조회를 거쳐 허가를 받은 후 총기를 구매할 수 있게 한다면 사고는 많이 줄어들 것이다.

 

 

총탄에 스러진 사람들이 아메리칸 드림을 찾아 이 땅에 와서 평생 열심히 살았을 이민 1세들이니 더욱 가슴이 아프다. 동병상련이다. 아메리칸 드림의 이면에 있는 총의 저주를 비켜나가지 못했다. 한인사회는 부디 무사하기를 빈다.

 

 

자료출처: 세계한인신문

  • 도배방지 이미지

아메리칸 드림, 아메리칸 저주, 권정희, 미주한국일보 관련기사목록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