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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일제국주의의 조선침략사(8):프레스아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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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일제국주의의 조선침략사(8)

2. 일제의 경제적략탈

프레스아리랑 | 기사입력 2023/08/12 [00:51]

미일제국주의의 조선침략사(8)

2. 일제의 경제적략탈

프레스아리랑 | 입력 : 2023/08/12 [00:51]

미일제국주의의 조선침략사(8)

 

머리글

 

1장 미일제국주의의 조선침략개시와 일제의 조선강점(1866~1905. 11)

 

1절 미일제국주의의 조선침략개시와 반식민지적예속화책동

1. 미일제국주의의 조선침략개시(1)

2. 미일제국주의의 범죄적공모결탁과 첫 예속적불평등조약의 강요(2)

3. 조약강요후 미일제국주의의 반식민지적예속화책동(3)

 

2절 일제의 조선강점과 그를 지원한 미제의 죄행

1. 일제의 대규모적무력침공과 조선에 대한 독점적지배실현책동(4)

2. 일제의 로일전쟁도발과 을사5조약의 날조를 통한 조선강점(5)

3. 일제의 조선강점을 적극 지원한 미제의 죄행(6)

 

2장 조선에 대한 일제의 식민지통치와 미제의 침략책동(1905. 11~1945. 8)

 

1절 조선에 대한 일제의 간악한 식민지통치

1. 일제의 정치적폭압통치(7)

2. 일제의 경제적략탈(8)

 

 

2. 일제의 경제적략탈

 

 

"일본제국주의자들은 조선의 부원을 마음대로 빼앗아갔으며 조선인민을 가혹하게 착취하였습니다" 라고 김일성 동지는 말씀하였다.

일제는 우리 나라를 강점한 후 조선의 부원을 닥치는대로 략탈해갔으며 우리 인민의 고혈을 짜내기 위하여 악랄하게 책동하였다.

조선강점시기 일제의 식민지경제정책의 기본은 조선을 락후한 농업국가로 남겨둔채 제국주의적방법과 봉건적방법을 비롯한 온갖 형태의 착취방법들을 다 적용하여 조선의 재부를 닥치는대로 략탈하며 조선인민의 고혈을 최대한으로 짜내는데 있었다.

 

강점 첫시기 중요생산수단의 강탈과 식민지략탈체계확립

일제는 조선강점 첫시기 경제정책의 기본방향을 조선에서 중요생산수단을 강탈하여 식민지략탈체계를 세우며 일제독점자본의 전면적침투를 위한 제반 기초를 마련하는데 두었다.

- 일제는 조선의 방대한 토지를 략탈하여 식민지적농촌수탈체계를 확립하였다.

강점 첫시기 일제가 토지략탈책동을 벌리게 된것은 토지가 기본생산수단이였고 농민이 당시 우리 나라 인구의 절대다수를 차지하였기때문이다.

○ 일제는 1908년 12월에 악명높은 《동양척식주식회사》를 조작하고 토지략탈을 미친듯이 감행하여 《통감정치》시기에 벌써 근 40만정보의 토지를 략탈하였다.

○ 일제는 《총독정치》로 넘어간 이후 이른바 《토지조사사업》을 통하여 토지를 대량적으로 략탈하며 식민지농촌수탈체계를 전면적으로 확립하였다.

일제는 1910년 3월부터 1918년 10월까지 기간에 전국적범위에서 《토지조사사업》을 감행하여 방대한 토지를 략탈하였다.

일제는 과세지면적을 1912년 말현재 239만 9 842정보로부터 1918년에는 434만 2 091정보로 늘이였으며 지세수입은 같은 기간에 2배로 늘이였다.

일제는 또한 봉건적착취관계를 보존하고 조장시켜 조선농촌경리발전을 극도로 저해하였으며 지주계급을 매수하여 식민지통치의 사회적지반을 닦았다.

- 일제는 산업분야에서 독점적식민지략탈체계를 확립하였다.

○ 일제는 《통감정치》시기 괴뢰내각을 사촉하여 광업, 림업, 수산업과 운수, 체신부문에 대한 독점적지배권을 확립하였다.

○ 일제는 《총독정치》로 넘어간 이후 각종 악법들을 조작하여 주요생산수단들을 전면적으로 강탈하고 조선의 모든 경제명맥을 틀어쥐였다.

• 일제는 1910년 12월 29일 《회사령》을 조작공포하고 조선민족자본의 발전을 억제하였으며 일제독점자본의 독점적지위를 확립하였다.

• 1915년 12월 24일에 《조선광업령》을, 1911년 6월 3일에는 《어업령》을 공포하고 이 부문에 대한 독점을 실현하였다.

 

《문화통치》를 표방한 시기 경제적략탈의 강화

- 일제는 일본에서의 식량위기를 해결하기 위하여 농촌에서 쌀략탈에 광분하였다.

○ 일제는 략탈적인 《산미증식계획》을 내들고 쌀략탈을 강화하였다.

- 일제는 산업분야에서 자본투하를 통한 략탈을 강화하였다. 

○ 일제는 자본투하를 강화할수 있는 유리한 길을 열어놓았다.

• 1920년 4월 1일 《회사령》을 페지하고 종래의 회사설립에 대한 《허가제》를 《등록제》로 바꾸었다.

이것은 일본독점자본의 조선진출에는 유리한 길을 열어주고 조선민족자본에 대해서는 그의 회사설립을 더욱 억제하려는것이였으며 동시에 일부 예속자본을 육성하여 식민지통치의 계급적지반을 보다 공고히 하기 위한 책동이였다.

• 1921년 12월 《조선광업령》의 일부를 뜯어고치였다.

여기에서 놈들은 《조선총독부보류지역》이외에서는 조선전역에 걸쳐 먼저 신청한 사람에게 광업권의 설정을 허가하며 새로 설정하는 광구에는 3년간 세금을 50%감면한다는것 등을 규정하였다. 놈들이 《조선총독부보류지역》을 신청대상에서 제외한것은 그것을 일본독점자본가들에게 넘겨줄수 있도록 하기 위한것이였으며 또한 허가신청순위에 따라 허가한다는것은 제놈들이 조사장악한 자료에 기초하여 유리한 광구를 먼저 일본자본가들에게 신청시켜 그들이 독점하게 하려는것이였다. 그리고 세금면제규정은 일본독점자본의 광업부문투자에 대하여 특별한 혜택을 주려는것이였다.

○ 일제는 자본투하를 통한 략탈을 강화하였다.

• 일제는 광물자원략탈을 강화하였다.

일제가 줄여서 발표한 자료에 의하더라도 1920~1930년사이에 대략 50t의 금과 3t의 사금, 420만t이상의 쇠돌과 약 126만t의 선철, 약 635만t의 석탄과 약 1억 8 000만t의 흑연 등을 략탈하였다.

• 일제는 각종 원료, 반제품공업부문에 대한 침투도 본격적으로 진행하였다.

그리하여 한편으로는 우리 나라의 풍부한 원료자원을 더 많이 략탈하고 다른편으로는 조선로동자들을 가혹하게 착취함으로써 고률의 식민지초과리윤을 짜내였다.

 

병참기지화책동과 물적자원《총동원》책동

- 일제는 1930년대 조선에서 병참기지화책동을 강화하였다. 

○ 일제는 《농공병진》을 떠벌이면서 15개년(1932~1946)의 《북선개척》계획을 세우고 우리 나라 북부국경지대에서 기형적인 군수산업건설을 다그쳤다.

1930년대 전반기 군수용특수강생산을 목적으로 성진제강공장과 청진제철공장을 건설하였으며 1936년에는 군수용화약생산을 목적으로 《조선질소화약주식회사》를 건설하였다.

○ 일제는 군수산업에 필요한 지하자원략탈을 발광적으로 감행하였다. 

- 일제는 《농촌진흥운동》의 기만적구호밑에 농촌수탈을 강화하였다.

○ 일제는 1932년부터 《농촌진흥운동》을 강요하였다.

목적-침략전쟁수행과 관련하여 증대되는 식량과 공업원료에 대한 수요를 보장하려는데 있었다.

내용-농업의 《합리적다각화》, 《근로정신의 배양》, 《부녀들의 옥외로동》, 《소비절약》 등을 통해 이른바 농민들의 식량을 보장하고 현금수입을 높이며 《부채의 상환》 등을 실현한다는것이였다.

일제가 들고나온 《농촌진흥운동》은 조선농촌에 대한 수탈을 은페된 형태에서 보다 효과적으로 그리고 대규모적으로 강화하기 위한 하나의 기만적인 수법이였다.

일제는 1932년부터 이른바 《농촌진흥》을 위한 강제적인 《남면북양》과 기만적인 《자작농창정계획》을 들고나왔다.

일제는 《남면북양》의 원칙에서 여러가지 《부업》을 하여 돈을 벌고 또 저들의 자금을 대부받아서 토지를 구입함으로써 소작농으로부터 자작농이 되기 위한 《운동》을 벌리라고 요란하게 떠들었으나 이것은 농민들의 피땀을 최대로 빨아내기 위한 간악한 술책이였다.

○ 일제는 농촌수탈을 쌀을 위주로 하면서 보다 넓은 범위로 확대강화하였다.

• 늘어나는 《군량미》보장을 위하여 식량략탈을 강화하였다.

일제는 쌀략탈을 위하여 1939년부터 강제공출제도를 실시했으며 1943년에는 폭력적식량략탈기관인 《식량영단》까지 설치하였다.

일제의 쌀략탈량은 끊임없이 늘어나 1930년에 543만석, 1936년에 946만석, 1942년에 1 125만 5 000여석, 1943년에는 1 195만 7 000여석에 달하였다.

이리하여 1939년에 조선에서의 인구 1인당 쌀소비량은 60kg이하로 떨어졌다.

일제는 조선에서 기름진 쌀을 빼앗아가고 만주에서 수수나 대두박을 가져다가 우리 인민들에게 비싼 값으로 팔아먹었다.

• 목화솜과 양털, 많은 집짐승들을 대량적으로 략탈하였다.

목화솜략탈량만 보아도 1933년에 4 683만근이였다면 1939년에는 1억 6 600만근에 달하였으며 조선농민들의 귀중한 역축인 소만 하여도 1933~1942년 기간에 무려 69만 6 614마리를 식용으로 략탈해갔다.

일제의 전시수탈의 강화로 하여 농촌경리는 더욱 혹심하게 파괴되였으며 농민들의 생활은 극도로 령락되였다.

- 일제는 멸망이 가까와짐에 따라 발악적인 물적자원 《총동원》책동을 벌렸다.

 

                                                               일제가 수탈한 금속으로 된 가정제품들과 일본으로 실어가기 위해 부두에 쌓아놓은 목화솜

 

일제는 1938년 4월에 《국가총동원법》과 《전시증세령》을 공포하였다. 일제는 이 악법들에 기초하여 모든것을 침략전쟁수행에 총동원하려고 발광하였다.

○ 일제는 수십가지 가렴잡세와 함께 《저금》, 《채권》, 《국방헌금》등의 명목으로 조선사람들의 마지막푼전까지 빼앗아냈다.

《전시증세령》을 공포한후 일제는 매년 그전보다 총액 1 100만여원의 세금을 더 강탈하였다.

○ 일제는 철제로 된 가정용품들과 농기구, 공공건물의 쇠울타리와 다리의 란간, 지어 놋그릇과 놋수저, 제상의 놋초대와 놋술잔, 녀자들의 비녀에 이르기까지 모든 금속제품들을 다 빼앗아갔다.

이처럼 일제는 식민지통치의 근 반세기동안 우리 나라를 저들의 대륙침략을 위한 병참기지로 만들어놓고 조선의 모든 인적, 물적자원을 최대한으로 짜내기 위하여 미쳐날뛴 가장 흉악한 략탈자이며 흡혈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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