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민중문화예술운동 파수꾼 대구역사문화고택보존 그 길을 걷다

프레스아리랑 | 입력 : 2020/08/06 [08:23]

 

  천광호 화백 © 프레스아리랑



어제 저물무렵 서양화가 천광호 화백(이하 천 화백)을 반월당에서 만났다. 그리고 시내 중심가와 봉덕동 일대의 골목길을 함께 걸었다.

 
대구의 외형은 화려하게 변했지만 뒷골목을 돌아보니 아직도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1970~1980년대 예전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곳이 적지 않았다. 
 
천 화백은 대구의 오래된 골목길처럼 변하지 않고 민족민중문화예술운동의 한 길을 걸어 온 사람이다. 민예총(민족민중문화예술운동총연합)대구 고문으로  ‘민족민중예술의 발전과 문화예술운동의 대중화’ 운동에 헌신해온 천 화백은 평생을 바쳐 한결같이 대구문화예술 지킴이 역할을 해왔다.
 
대구역사문화관광해설사로 활동하면서 20년 이상 청소년, 아이들을 데리고 지역의 곳곳 문화유적지를 체험하도록 이끌었고, 사회공동체를 위하는 공공미술이라는 창업 아이템으로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이 공모한 ‘사회적기업육성사업’에도 선정되어 사회적 목적을 추구하면서 수익을 창출하는 지속 가능한 사회적기업의 롤모델를 만들었다.
 
그것이 ‘생활미술연구소’라는 이름의 사회적기업인데, 청년시민의 미술을 활용한 공공 벽화 작업을 대구시에 건의하고 자신의 미술재능을 바탕으로 벽화 등 다양한 공공미술작품과 그림, 조형물 제작 등을 통해 대구 도심가를 예술적이고 창조적인 모습으로 바꾸어 놓고 있다.
 
천 화백은 언제나처럼 더불어 사는 삶의 소중함을 잊지않는 사람이다. 현대시대 새로운 다문화사회로 진입하는 우리나라에 또 다른 소외계층인 외국인노동자들과 그들의 자녀에 대해 많은 관심을 지속적으로 쏟고 있다.
 
또 길을 가다가 병들거나 다친 노숙자를 보면 그냥 지나치지 않고 병원으로 데려가 치료를 받게 해주는 따뜻한 마음이 넉넉한 소유자이다.
 
이제 대구는 고담의 도시라는 과거에 머물러 있지 말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자. 독립투사 민족시인 이육사 시인, 민족시인 이상화 시인, 일제식민지시기 민의를 개몽했던 이인성 화가의 도시이고 시월민중항쟁에 뿌리를  두고 2. 28학생민주화운동, 미완의 4. 19민중혁명, 4. 9인혁당사건 그리고 1987년 민주화운동으로 군부독재정권에 저항했던 도시이다. 
 
일제에 저항했던 대구의 독립운동역사와 일제 해방 후 민주화운동과 함께했던 작가들의 주옥같은 문학을 비롯한 예술작품을 남긴 도시이다. 
 
이에 천 화백은 대구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그래서 그런지? 지역의 미술인들이 대구를 떠나지 않고 발붙일 수 있는 터전을 만드는데도 남다른 노력을 쏟고 있다. 
 
단지 미술 뿐만 아니라 문학인들과의 교류도 폭이 넓어 지역 문인 누군가 시집출판기념회를 하면  기타연주로 축가를 불러주며 재능기부를 마다하지 않았다.
 
지난 문해청 시인, 최창윤 시인, 최영 시인 등의 시집출판기념회에서 멋드러진 기타연주로 행사를 빛냈다. 이어 오는 8월 28일 정대호 시인 출판기념회에도 축가를 예약하고 있다.
 
천 화백은 영남대학교 서양학과를 나와 원광대학교에서 회화, 벽화, 문화재 보존 수리 과정을 배웠다. 이후 1980년대 한국 민족민중미술 창립동인으로 개인전만 10회 이상 열었다. 
 
대구문화해설관광사로 대구문화의 지킴이 역할을 하며,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천 화백으로 인해 대구 민족민중문화예술운동의 불빛은 결코 꺼지지 않고 영원할 것이다.
 
<박상봉 시인의 글 요약/정리 문해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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