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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조선혁명선언 16

탁란공화국

프레스아리랑 | 기사입력 2026/08/15 [12:37]

新조선혁명선언 16

탁란공화국

프레스아리랑 | 입력 : 2026/08/15 [12:37]

新조선혁명선언 16

탁란공화국

 

 

38선과 반공이념...그리고 기독교

미국에 복무하는 半식민지 지렛대

영혼까지 점령한 성공적 탁란둥지

 

 

"일본과의 바통 터치, 일제에서 미제로,

분단과 전쟁, 80년 이상 총성경쟁이

가열된 나라, 이것이 우리가 겪는 8.15

이후의 역사다."

 

 

일찍이 카쓰라-태프트 밀약으로 조선을 일본에 넘긴 미국이 일본으로부터 다시 조선을 넘겨받은 사건이 1945년 8월의 원폭 투하다.

일본은 패전과 함께 조선에 대한 식민 지배를 상실했지만 본토는 분할점령을 피했다.

그러나 핍박받던 조선은 오히려 갈라지고 말았다.

 

미국은 조선을 접수했지만 완전히 먹을 수는 없었다.

약소민족 해방을 기치로 내건 소비예트 군대와 항일무장 독립세력이 이미 북반부에서 활동 중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이 꺼내 든 카드가 38선과 반공이념,

그리고 기독교다.

 

미국은 소련군과 항일무장 독립 세력이 먼저 진입한 북반부를 견제하면서 38선을 경계로 남반부를 자신의 점령구로 확보했다.

해방구가 아닌 점령지였다. 공식 문서에선 조선의 독립국 수립이 목표라 포장했음에도 속내는 아니었다.

 

이승만 이식...진짜 씨알들 밀어내기

 

1945년 9월 7일 맥아더가 발표한「조선 인민에게 고함」(포고 제1호)에는 다음과 같은 표현이 나온다.

“본관의 지휘 하에 승리에 빛나는 군대는 금일 북위 38도 이남의 조선 영토를 점령한다.”

 

그랬다. 본질적으로 점령군이었다.

포고문 앞부분에는 공식적인 점령 목적을 “조선의 해방 독립과 조선인의 인간적 종교적 권리 확보”라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80년이 지난 21세기 현재까지 실질 내용은 미국패권에 복무하는 분단이요, 전쟁기지화다.

완전 식민지가 아닌 半식민 현실이라 할 수 있다.

 

일본과의 바통 터치, 일제에서 미제로, 분단과 전쟁, 80년 이상 총성 무기경쟁이 가열된 나라, 우리가 겪는 1945년 8.15 이후의 역사다.

 

미국은 이와 함께 38선 이남에서 자기들 이익과 패권을 지키며, 대중•대러 견제임무를 수행해 줄 새끼 알을 탁란했다.

바로 이승만의 이식이다.

정신사상적 근간은 반공 이념과 기독교국가 건설이다.

 

옛 봉건시대 숭명중화(崇明中華) 유교에서 숭미반공(崇美反共) 기독교로의 전환이었다.

이승만은 그런 임무수행의 적임자였다.

우선 남한 단독정부 수립論으로 38선에 부응했다.

38선과 분단 정부수립에 반대하거나 친일파를 청산하자거나 민족자주 독립을 외치는 자들은 제거되거나 북으로 밀려났다. 소위 월북이다.

탁란한 새끼 뻐꾸기가 주인의 씨알을 핍박하고 밀어냈다.

 

올라가는 이들 & 내려오는 이들

 

제일 먼저 사회주의 독립운동가들이었다.

일제시기 항일독립운동 주축을 이루었던 이들을 반공의 이름아래 배척했다.

후일엔 국사교과서에서도 배제하고 은폐했다.

다음으로 이승만 노선에 반대하는 여러 세력과 민족주의 인사들을 거세했다.

 

박헌영이 미군정의 탄압과 체포위기가 거세지자 북으로 이동했다.

절정의 대중적 인기를 누리던 사회민족주의 여운형은 암살당했다.

조선의열단 대장 김원봉은 친일경찰 노덕술에게 모욕을 당하는 등 극심한 친미반공• 친일파 부활 속에 자신의 공간을 찾을 수 없었다.

결국 북을 택했다. 38선을 베고 죽겠다던 김구주석마저 제거된다.

 

같은 시기 반민족 특위활동을 하던 인사들과 민족종교 지도자들도 거의 빨갱이로 몰려 탄압받거나 해체당했다.

유수한 민족작가들과 예술인도 북행길을 택했다.

일제로부터 해방된 나라에서 친일파들이 판치는 꼴을 보아줄 수 없었다.

 

반면, 서북청년단으로 대표되는 북쪽 친일 기독인들과 친일지주 출신들은 남행길을 택했다. 반공과 자유를 외쳤지만 북쪽에 선 살 수 없을 정도로 반민중 반역사적 기득권 출신들이 많았다.

이런 이들이 제주 4.3항쟁과 여순항쟁을 진압하며 대한민국 정부가 자리 잡았다. 미군정 기획대로 조선의 남반부를 미국화 할 분단정부였다.

 

이승만은 한편, 1948년 5월 31일 제헌국회 개회식 국회의장 개회사에서 하나님 은혜를 언급했다.

향후 대한민국에서 교회 부흥과 이들의 지독한 북조선 혐오증 숭미반공 극우활동이 암시됐다. 영혼까지 점령할 탁란둥지 정착이었다.

 

전쟁 길 재촉한 북진통일論

 

무소불위 권력자가 된 이승만은 미국 뒷배를 믿고 북진통일을 외쳤다.

아침은 서울에서, 점심은 평양에서, 저녁은 신의주에서...미국에 무기 제공을 요구하는 한편 38선에선 국지전을 유발했다.

이에 대해 미국이 오히려 무기제공을 주저하는 면까지 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전쟁은 38선이 그어진 순간 잉태되었다.

38선을 중심으로 남북간에는 1949년부터 사실상의 국지적 내전이 반복되고 있었다.

이러한 충돌과 상호 적대가 1950년 전면전으로 확대된 것이다.

 

북쪽 지도부로서도 이승만 정권을 그대로 두고서는 완전한 자주독립과 전민족 해방을 이룰 수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당시는 남북 모두 무력통일을 마다하지 않던 시대였다.

이런 가운데 이승만의 북진통일論과 국지전 유발은 북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전쟁으로 가는 길을 재촉한 사실임을 부인할 수 없다.

 

80여년 후 윤석열이 계엄을 위해 시도하다가 실패한 전쟁유도 행태의 원조라 할 수

있다.

북의 남침이라 일컫는 6.25 전쟁은 이렇게 발발했다. 38선과 분단자체가 전쟁의 씨앗이었다. (계속)

 

2026. 8. 김문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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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은 1950년 6월 25일에 갑자기 시작된 것이 아니다. 1945년의 분단, 1948년의 남북 단독정부 수립, 1949년 이후 38선 일대의 반복되는 무력충돌, 남북한 지도자들의 통일의지가 축적된 끝에 전면전쟁으로 폭발한 것이다.

이는 분단 80년을 넘긴 오늘날에도 대북강경 적대정책을 계속하며, 북을 자극하는 한미동맹체제가 양심적 전향적으로 성찰해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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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新조선혁명선언은 단재 신채호 선생의 '조선혁명선언' 정신을 계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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